그때 세조(世祖)가 농사에 힘쓰고 학교를 일으키고 군사를 양성하기를
일삼아서, 궁병(弓兵) 백만을 길러 오랑캐[夷狄]를 제압하려고 결심하고
진법(陣法)을 익히고 군사를 훈련하니, 왜인과 야인들이 모두 위덕(威德)을
흠모하여 다투어 와서 조현(朝見)하였다.
단종실록 10권, 단종 2년 1월 6일 무오 5번째기사
1454년 명 경태(景泰) 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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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단종실록 10권, 단종 2년 1월 6일 무오 5번째기사 1454년 명 경태(景泰) 5년 김우을두합 등이 야인들이 세조를 알현하고자 원함을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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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을두합 등이 야인들이 세조를 알현하고자 원함을
아뢰다
김우을두합(金亐乙豆哈) 등이 돌아와서 말하기를,
"글을 가지고 가서 제종 야인(諸種野人)들을 효유(曉諭)하니, 감격하고 기뻐하여 머리를
조아리지 않은 이가 없었고, 상경(上京)하여 도통사(都統使)037) 를 알현(謁見)하고자
원하였습니다."
하였다. 일찍이 중국에서 도통사를 알현하였던 자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는데, 통사(通事)
김유례(金有禮)가 요동(遼東)에서 돌아와서 또한 말하기를,
"요동 도사(遼東都司) 왕상(王祥)이 말하기를, ‘요동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수양 대군(首陽大君)은 대장(大將)의 의모(儀貌)가 있었는데, 이제 과연
발란 반정(拔亂反正)038) 하였다.’ 하고 탄상(嘆賞)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하였다. 그때 세조(世祖)가 농사에 힘쓰고 학교를 일으키고 군사를 양성하기를 일삼아서,
궁병(弓兵) 백만을 길러 오랑캐[夷狄]를 제압하려고 결심하고 진법(陣法)을 익히고
군사를 훈련하니, 왜인과 야인들이 모두 위덕(威德)을 흠모하여 다투어 와서 조현(朝見)
하였다.(“時, 世祖以務農、興學、養兵爲事, 期於控弦百萬、威制夷狄,
習陣訓兵, 倭、野人皆慕悅威德, 爭來朝見.“)
【태백산사고본】 4책 10권 5장 A면【국편영인본】 6책 658면
【분류】왕실-국왕(國王) / 외교-야(野)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군정(軍政)
/ 군사-병법(兵法) / 변란-정변(政變)
[註 037] 도통사(都統使) : 세조(世祖).
[註 038] 발란 반정(拔亂反正) : 난을 평정하고 질서를 회복함.
“3. 조선의 병과
조선의 병과는 기병 전력이 중심이 됐던 전기의 병과와 화약무기가 중심이
된 후기의 병과가 좀 차이가 있습니다. 조선 전기의 병과는 위에 언급한
중세유럽이나 삼국시대의 중국과 크게 차이나지는 않아 중기병이 없다는
것을 제외하면 경기병(궁기병), 궁병, 중장보병 등 중국의 병과와 큰 차이는
없습니다. 각 병과의 장단점도 위에 언급한 바와 비슷합니다. 다만 전기
조선군은 당시로써는 편전, 각궁 등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화살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조선 전기의 병과는 위에 언급한 병과들과 큰 차이가 없으니 넘어가도록
하고 조선 후기의 병과는 주로 살수, 사수, 포수, 마병(기병)등으로 구분
됐습니다.이제 조선 후기(임진왜란 이후)의 각 병과를 살펴보면,
가. 살수: 대게 창, 칼로 무장한 접근전 위주의 병사를 지칭합니다.
주요임무는 포수(총수) 및 사수를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병의
돌격으로부터 아군을 보호하는데 적합한 병과.
나. 사수: 주로 각궁 등 화살로 무장한 병사를 말합니다. 조선 후기의
군대는 조총이 주력이었지만 조총은 연사속도가 느렸기 때문에 연사
속도가 조총보다 월등히 빠른 (분당 14발 정도) 인 사수의 지원사격이
필수적이었습니다. 타 궁병과 마찬가지로 접근전 능력은 그다지 기대할
수 없는 병과.
다. 포수: 조선 후기의 주력병입니다. 조총으로 무장한 이들은 간단히 말해
총병입니다. 막강한 원거리 공격력을 자랑하나, 연사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기병의 기습공격에 취약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라. 마병: 말 그대로 기병. 조선전기에는 기병숫자가 정규 중앙군의 반
(일설에는 4분의 1이라고도 함) 까지 육박했지만 후기에는 화약무기의
도입으로 그 중요성이 줄어들었습니다.”
궁병이 100만이면 창병, 기병, 지원군 등
수백만에 달하는 대단한 병력이었을 것이라 예상된다!
무용총 (아름다운 무용도가 그려져 있는 고구려의 옛 무덤) 서쪽 벽에 있는 수렵도
말을 타며 활을 쏘는 고구려 무사의 모습이 보인다.
고구려인들의 기상을 가장 잘 나타내는 벽화로 손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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