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는 본래 해상의 고도(孤島)이니,
의외에 적선이 정박할까 염려하여 해변의 여러 곳에
목책(木柵)을 설치하자고 한 것은 사실 일리가 있는 견해입니다...
江華自是海中孤島, 慮有意外賊船之來泊, 欲立木柵于海邊諸處, 亦有意見
광해군일기[중초본] 80권, 광해 6년 7월 11일 신유 2번째기사
1614년 명 만력(萬曆) 42년
http://sillok.history.go.kr/id/koa_10607011_002
조선왕조실록
○備邊司回啓曰: "江華自是海中孤島, 慮有意外賊船之來泊, 欲立木柵于海邊諸處, 亦有意見。 而一府之力, 勢難遍立於環島泊船之處。 令本道監司, 更爲十分詳量啓聞後, 隣近各官, 隨便分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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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강화도의 해변에 목책을 설치하기를 청하다
비변사가 회계하기를,
"강화도는 본래 해상의 고도(孤島)이니, 의외에 적선이 정박할까 염려하여 해변의 여러 곳에 목책(木柵)을 설치하자고 한 것은 사실 일리가 있는 견해입니다. 그러나 한 부(府)의 힘으로 섬주위의 배가 정박할 수 있는 모든 곳에 목책을 설치하기는 어려운 형편입니다. 본도의 감사가 다시 십분 자세하게 헤아려 계문한 뒤에 인근의 각 고을에 편리한 쪽으로 나누어 배정하게 하소서.
전선(戰船)은 경강(京江)에 머무르고 있는 주사(舟師)에게 소속된 것 중에서 한 척을 본부로 이송시켜 수리하고 또 수군을 준비하게 해야겠습니다. 그러나 한 척의 전선으로는 유사시의 용도에 부족하니, 통영(通營)이나 수영(水營)에서 건조하여 강화도로 보내는 방법도 있습니다.
덕진(德津)·승천부(升天府)·고암(羔巖)·갑곶진(甲串津) 등의 여러 곳에 관방(關防)을 설치하는 일도 감사로 하여금 형세를 상세히 살피고 물자와 힘을 헤아려서 일시에 함께 설치하지는 못하더라도 그중에서 가장 긴요한 곳에 설치하는 일을 참작하여 계문한 뒤에 처치하게 하소서.
바다를 방비할 책임은 실로 수사(水使)와 월곶(月串)·정포(井浦) 등의 진(鎭)에 있으니, 엄격하고 분명하게 신칙하여 적도들이 바다를 건너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참으로 급선무입니다. 다만 각 진에서 나누어서 지키는 수군의 숫자가 많지 않은데, 사부(斜付)의 길이 매우 넓어서 수졸들이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수영(水營)에서 명목을 만들어 혹은 베나 목면을 징수하고 혹은 방비하러 입번하는 군졸의 숫자를 감하여 한 달에 탈취하는 수가 3, 4십 명이나 되며 적어도 2, 3십 명을 밑돌지 않습니다. 그렇게 징수한 가포(價布)가 마침내 주장(主將)의 사사로운 용도로 쓰여지는데, 그들이 멋대로 탈취하는 것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수군을 설립한 것은 오로지 방수(防戍)를 하기 위한 것인데, 격군(格軍)과 전선·병선의 도사공(都沙工)을 수색하여 모두 가포를 징수하고 있습니다. 주장의 소행이 이와 같은데도 적을 잡는 데에 게을리하는 죄는 으레 변장(邊將)에게 돌아가 결국 방비가 허술하게 되고 마니 실로 한심합니다. 이런 폐단이 이미 고질화되어 어느 곳이나 다 똑같으니, 이런 뜻으로 제도(諸道)의 수사와 감사·병사들에게 두루 하유하여 베를 징수하고 군졸을 내보내거나 군졸을 줄이고 나누어 방비하는 등의 폐단을 일체 혁신하여 난후의 누적된 폐단을 답습하지 말고 방비에 전력하게 하소서. 그리고 모든 감·병사들에게 곧바로 각 진과 포에 두루 알려 착실히 거행하게 하소서."
하니,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29책 29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323면
【분류】군사-군정(軍政) / 군사-중앙군(中央軍) / 군사-관방(關防) / 군사-군역(軍役) / 사법-탄핵(彈劾)
"강도(江都)의 고을은 지역이 사방 백 리이고 사면이 물과 마주 대하고 있습니다. 가장 상류에 있어서 서울과 짝이 되어 사방에 적의 충돌을 막으면서 팔방을 제압하고 있으니, 이것은 실로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춘 금성 탕지(金城湯池)로서 만세에 망하지 않을 훌륭한 땅입니다. 비록 넓은 천하와 큰 해내의 방지(方誌)를 총괄하여 논한다 해도 형세의 기특함이 이것에 방불한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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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江都)의 고을은 지역이 사방 백 리
"강도(江都)의 고을은 지역이 사방 백 리이고 사면이 물과 마주 대하고 있습니다. 가장 상류에 있어서 서울과 짝이 되어 사방에 적의 충돌을 막으면서 팔방을 제압하고 있으니, 이것은 실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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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이 고을은 〈한양(漢陽)과의 거리가 백 리인데다〉 포구와 항구 밖에 끼어 있고 반양(泮洋)의 좌편에 솟아 있어서 사면으로 적을 막을 수 있는 형승지(形勝地)이니, 진실로 판옥선(板屋船) 30척으로 각기 병선 몇 척만 거느리고 네 부대로 나누어 요해처를 가로막고 지킨다면 비록 3오(三吳)의 백만 전함이 오더라도 어떻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상신이 말한 것에 따라 양남의 좌우 수영에 통보하여 다음달 20일 전까지 배정된 수의 판옥선을 거느리고 포구에 도착하게 한다면 그 정돈된 격군(格軍)으로 30척에 사용할 사람을 조달하여〈혹 주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광해군일기[중초본] 141권, 광해 11년 6월 29일 경진 1번째기사
1619년 명 만력(萬曆) 47년
동부승지 조찬한이 주사를 보완히는 시급함을 아뢰다
http://sillok.history.go.kr/id/koa_11106029_001
조선왕조실록
○己未六月二十九日庚辰同副承旨趙纘韓啓曰: "江都爲邑, 地方百里, (而)四面面水。 最居上游而與京輦作配, 四絶賊衝而控制八方, 此實天府金湯, 萬世不亡之右地也。 雖以天下之廣、海內之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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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두 기록을 비교해 보면
"강화(江華)는 본래 해상의 고도(孤島)"라고 되어있고!
"강도(江都)는 가장 상류에 있고, 한양(漢陽)과의 거리가 백 리이고,
한양과 짝이 되어 사방에 적의 충돌을 막으면서 팔방을 제압하고 있고,
사방 백 리이고 사면이 물과 마주 대하고 있는 지역"이다!
현재의 강화도
해상의 고도-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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