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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기사

충주는 조령과 추풍령의 사이에 있고...

충주(忠州)는 조령(鳥嶺)과 추풍령(秋風嶺)의 사이에 있고...

 

 

선조실록 49권, 선조 27년 3월 27일 을사 2번째기사

1594년 명 만력(萬曆) 22년

 

http://sillok.history.go.kr/id/kna_12703027_002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49권, 선조 27년 3월 27일 을사 2번째기사 1594년 명 만력(萬曆) 22년 비변사에서 김명윤을 충주 목사로 삼아 충주의 수비를 담담하게 할 것을 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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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에서 김명윤을 충주 목사로 삼아 충주의 수비를 담담하게 할 것을 청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충주(忠州)는 조령(鳥嶺)과 추풍령(秋風嶺)의 사이에 있고 또한 나라의 상류(上流)에 위치하고 있으니 관방 중지(關防重地)로서 이곳보다 더한 곳은 없습니다. 지금 비록 난리를 겪어 잔폐되었으나 서북 방면에 거주하는 백성들이 아직 모두 죽지 아니하였고 흩어져 떠난 사람들 중에 다시 돌아와 살고 싶어하는 이가 매우 많으니 진실로 인재를 가려서 맡긴다면 남은 백성을 어루만져 모으고 군병을 조련하는 것을 겸하여 시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일에 인재 얻기가 어려워서 김협(金鋏)을 차출하여 보냈는데 조정의 뜻이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건마는 도임한 후로 태만하게 일을 하지 아니하다가 끝내는 죄를 저질러 체포되었으니 매우 가슴 아픈 일입니다. 지금 차출하여 보내는 이 문제에 득실의 관계됨이 가볍지 아니하므로 신들이 거듭 상의하였는데, 무신 중 김명윤(金命胤) 같은 이가 자못 감당할 만합니다. 전일에 파주 목사(坡州牧使)로 있었는데 백성들이 지금까지도 사모하여 칭송(稱頌)하고 있으니 만일 김명윤을 충주 목사로 삼는다면 다른 사람보다 나을 듯하고 마침 산직(散職)으로 있는 중이어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제수하라고 답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9책 49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242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영남에서 서울로 오는데는 죽령(竹嶺)·조령(鳥嶺)과 황간(黃澗)의 길이 있고, 이 밖에도 무수한 소로(小路)들이 종횡으로 얽혀 있습니다.

 

선조실록 40권, 선조 26년 7월 3일 을묘 3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http://sillok.history.go.kr/id/kna_12607003_003

 

조선왕조실록

○備邊司啓曰: "天朝經略諸公, 爲我國, 欲據險設關, 以建萬世久長之策, 其意則盛矣。 我國之銜恩感激, 寧有紀極? 第念我國事勢, 與中朝有異。 中朝設關之處, 則延袤雖廣, 城堡(墽)〔墩〕 臺, 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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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산보다 물을 지키는 것이 옳다는 의견을 제시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명(明)나라의 경략과 제공(諸公)이 우리 나라를 위하여 험한 곳에 관(關)을 설치하여 만세토록 장구(長久)한 계책을 세워 주려는 고마운 뜻에 우리 나라는 끝없이 감격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사세(事勢)는 중국과 다릅니다. 중국에 관을 설치한 곳에는 지역이 아무리 넓어도 지세(地勢)가 막힌 곳에 성보(城堡)와 돈대(墩臺)를 설치하고 요해처(要害處)에 관구(關口)를 만들어 많은 군사를 징발(徵發)하여 열지어 엄히 지키게 하므로 방어가 철통같지만, 우리 나라는 원래 병력이 과약(寡弱)한 데다가 근래에는 여역(癘疫)과 기근으로 백성의 수가 날로 줄어들었으며 전쟁으로 적에게 죽은 수도 얼마인지 헤아릴 수도 없으므로 조종조(祖宗朝)에 설치한 진(鎭)·보(堡)·성(城)·읍(邑)마저도 지킬 군사가 없는 형편인데 다시 무슨 힘으로 관을 설치하여 지키겠습니까. 하물며 호남·영남에서 서울로 직통(直通)하는 도로가 많은 데이겠습니까.

()을 넘는 도로만을 말하더라도 영남에서 서울로 오는데는 죽령(竹嶺조령(鳥嶺)과 황간(黃澗)의 길이 있고, 이 밖에도 무수한 소로(小路)들이 종횡으로 얽혀 있습니. 이름이 없는 소로 이외에도 그리 높지 않고 낮은 산들은 모두 통행이 가능하니, 아무리 삼로(三路)226) 에 관을 설치한다 하더라도 적을 방어하는 데는 별 도움이 없고, 단지 한바탕 소요스러운 폐단만을 일으킬 뿐입니다. 지난해의 적변(賊變) 때만 보더라도 왜적이 산을 넘는 것은 수월하게 여기고 물을 건너는 것은 어렵게 여겨 물이 말[馬]의 배까지만 차도 감히 경솔히 건너지 못하였습니다. 강동(江東)의 얕은 여울도 매양 와서 탐색(探索)하기만 하고 건너려 하지 않았으며, 이 밖에 연천(漣川)·양근(楊根) 등 여울이 있는 고을이라면 모두 침범하지 못하였으니, 이로써 보면 산을 지키는 것이 물을 지키는 것만 못합니다. 그러니 한강(漢江)·임진강(臨津江)·낙동강(洛東江)·백마강(白馬江) 등의 건널 수 있을 만한 얕은 여울에 능철(菱鐵)이나 거시(拒柴)를 설치하기도 하고, 또는 여울 어귀에 계단식으로 돌담을 쌓아 몸을 숨기고서 발사할 수 있는 곳을 만든다면 인력(人力)을 많이 소비하지 않고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변방의 요구(要口)227) 도 긴밀히 지켜야 하고 각읍의 성지(城池)도 지켜야 하며, 또 연강(沿江)의 수비도 철폐할 수 없으므로 여력(餘力)이 없는데 어느 겨를에 관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이는 나라를 수호하는 중대한 일이어서 신들이 참견하여 논란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이란 실제가 중요한 것인데, 마음속으로 그 관을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천청(天聽)에 다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어 감히 앙품(仰稟)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략의 지휘를 따라야 한다."

하고, 이어 묻기를,

"비변사 초기(草記) 안에 ‘왜적이 산을 넘기는 수월하게 여기고 물을 건너기는 꺼리니, 여울 어귀에 계단식으로 돌담을 쌓아 몸을 숨기고서 발사할 곳으로 만들고자 한다.’고 하였는데, 비변 당상(備邊堂上)들은 모두 전쟁에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니, 이 말은 이일(李鎰)에게서 나온 것인가? 잘 알아보아 아뢰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2책 40권 3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25면

【분류】

군사-관방(關防) / 외교-왜(倭) / 외교-명(明)

 

[註 226]  삼로(三路) : 죽령·조령·황간.

[註 227]  요구(要口) : 전략상 중요한 곳의 입구.

 

 

 

 

 

선조실록 49권, 선조 27년 3월 27일 을사 2번째기사

1594년 명 만력(萬曆) 22년

 

http://sillok.history.go.kr/id/kna_12703027_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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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49권, 선조 27년 3월 27일 을사 2번째기사 1594년 명 만력(萬曆) 22년 비변사에서 김명윤을 충주 목사로 삼아 충주의 수비를 담담하게 할 것을 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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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에서 김명윤을 충주 목사로 삼아 충주의 수비를 담담하게 할 것을 청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충주(忠州)는 조령(鳥嶺)과 추풍령(秋風嶺)의 사이에 있고 또한 나라의 상류(上流)에 위치하고 있으니 관방 중지(關防重地)로서 이곳보다 더한 곳은 없습니다. 지금 비록 난리를 겪어 잔폐되었으나 서북 방면에 거주하는 백성들이 아직 모두 죽지 아니하였고 흩어져 떠난 사람들 중에 다시 돌아와 살고 싶어하는 이가 매우 많으니 진실로 인재를 가려서 맡긴다면 남은 백성을 어루만져 모으고 군병을 조련하는 것을 겸하여 시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일에 인재 얻기가 어려워서 김협(金鋏)을 차출하여 보냈는데 조정의 뜻이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건마는 도임한 후로 태만하게 일을 하지 아니하다가 끝내는 죄를 저질러 체포되었으니 매우 가슴 아픈 일입니다. 지금 차출하여 보내는 이 문제에 득실의 관계됨이 가볍지 아니하므로 신들이 거듭 상의하였는데, 무신 중 김명윤(金命胤) 같은 이가 자못 감당할 만합니다. 전일에 파주 목사(坡州牧使)로 있었는데 백성들이 지금까지도 사모하여 칭송(稱頌)하고 있으니 만일 김명윤을 충주 목사로 삼는다면 다른 사람보다 나을 듯하고 마침 산직(散職)으로 있는 중이어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제수하라고 답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9책 49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242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충주(忠州)는 조령(鳥嶺)과 추풍령(秋風嶺)의 사이에 있고 또한 나라의 상류(上流)에 위치하고 있으니 관방 중지(關防重地)로서 이곳보다 더한 곳은 없습니다.

 

 

 

"충주(忠州)는 조령(鳥嶺)과 추풍령(秋風嶺)의 사이에 있고 

 

충주(忠州)

 

 

 

 

충주(忠州) - 문경(聞慶)

 

 

 

 

문경에서 충주로 가는 길은 조령이고,

문경에서 이화현을 넘어 연풍을 거쳐 충주로 간다. 

 

 

 

충주(忠州) - 추풍령(秋風嶺)

 

 

추풍령(秋風嶺)

 

 

김천에서 추풍령을 넘어 황간으로 간다.

 

 

 

추풍령(秋風嶺)에서 충주(忠州)를 가는 길은

 

 

 

김천 - 추풍령 - 황간 - 청산 - 보은 - 괴산, 연풍 - 충주이다.

 

 

 

조령(鳥嶺) - 추풍령(秋風嶺)

 

 

 

 

 

조령(鳥嶺) - 추풍령(秋風嶺) 사이에

이화현, 이화남령, 율현, 웅현 등 여러 고개가 있다.

 

 

"오랫동안 경기도-충청도-경상도를 오갔던 충주-문경으로 거치는 조령과 보은-상주로 거치는 화령으로 가는 교통로가 타격을 입었고, 국가개발축에서 비켜나가면서 충주는 한동안 도시발달이 정체되었다."

 

출처: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B6%A9%EC%A3%BC%EC%8B%9C

 

충주시 - 나무위키

역사 문화 관광의 도시!충주는 중원문화의 중심지로서 한반도의 중앙부에 위치하여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일 뿐 아니라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워온 역사의 고장이다.충청

namu.wiki

 

 

 

오랫동안 경기도-충청도-경상도를 오갔던

 

 

충주-문경으로 거치는 조령

 

 

 

 

보은-상주로 거치는 화령

 

 

으로 가는 교통로보다

 

추풍령은 더 남쪽에 있다.

 

 

조령(鳥嶺) - 추풍령(秋風嶺) 사이에는

연풍, 괴산, 청안, 보은, 청산, 옥천, 영동, 황간 등 여러 도시가 있다.

 

충주는 문경을 지나 조령을 넘어서 있다

충주는 문경을 지나 이화현을 넘어 연풍을 지나서 있다

충주는 상주를 지나 화령을 넘어 보은을 지나 괴산, 연풍을 지나서 있다

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다.

 

 

 

 

()을 넘는 도로만을 말하더라도 영남에서 서울로 오는데는 죽령(竹嶺조령(鳥嶺)과 황간(黃澗)의 길이 있고, 이 밖에도 무수한 소로(小路)들이 종횡으로 얽혀 있습니. 이름이 없는 소로 이외에도 그리 높지 않고 낮은 산들은 모두 통행이 가능하니, 아무리 삼로(三路)226) 에 관을 설치한다 하더라도 적을 방어하는 데는 별 도움이 없고, 단지 한바탕 소요스러운 폐단만을 일으킬 뿐입니다. 

 

 

죽령(竹嶺조령(鳥嶺)과 황간(黃澗)의 길

 

죽령(竹嶺) - 조령(鳥嶺)의 길

 

 

 

황간(黃澗)의 길

 

 

추풍령(秋風嶺) 이라 하지 않고 

황간(黃澗)의 길이라고 썼다.

 

 

 

죽령(竹嶺)·조령(鳥嶺)과 황간(黃澗)의 길=추풍령(秋風嶺) 

 

 

 

 

대동여지도 경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