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기사

거질다포居叱多浦는 대마도對馬島와 민가의 연화煙火를 서로 바라볼 수 있을 만치 가깝고...

진실한사람2 2022. 10. 25. 12:31

거질다포(居叱多浦)는 대마도(對馬島)와 민가의 연화(煙火)를 서로 바라볼 수 있을 만치 가깝고...

 

 

세종실록 95, 세종 24 3 1일 임술 5번째기사

1442년 명 정통(正統)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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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95권, 세종 24년 3월 1일 임술 5번째기사 1442년 명 정통(正統) 7년 거질다포 위에 연대를 설치하고 취각을 불 사람을 두어 적변을 알리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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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질다포 위에 연대를 설치하고 취각을 불 사람을 두어 적변을 알리게 하다

 

병조에서 경상도 관찰사의 보고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거질다포(居叱多浦)는 대마도(對馬島)와 민가의 연화(煙火)를 서로 바라볼 수 있을 만치 가깝고, 또 방원현(防垣峴)은 이 거질다포와 도로(道路)가 서로 통하니, 청하옵건대, 이 고개 위에다가 연대(煙臺)를 설치하고 또 각성(角聲)이 서로 들릴 수 있는 땅에 취각(吹角)할 사람을 두고서, 만약 적변(賊變)이 있을 때는 이런 것으로 빨리 알리게 하여 적들이 가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30책 95권 26장 B면【국편영인본】 4책 402면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통신(通信)

 

 

 

 

 

“거칠산국[ 居漆山國 ]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있던 삼한 시대의 소국(小國).

 

개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거칠산국(居漆山國)은 신라에 편입되어 거칠산군(居漆山郡)이 되었다가 경덕왕 때 동래군(東萊郡)으로 개명되었다. 거칠산국은 일반적으로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 한조(韓條)에 전하는 변진독로국(弁辰瀆盧國)의 다른 이름으로 보고 있는데, 장산국(萇山國) 혹은 내산국(萊山國)이라고도 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관련 기록이 전하며, 모두 동일한 정치체 또는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명칭 유래

거칠산국이라는 국명의 유래는 지금의 부산 중심부에 있는 황령산(荒嶺山)과 관련짓는 것이 일반적이다. 황령산의 한자어인 ()’ ()’은 모두 우리말의 거칠다라는 의미와 통한다. 황령산은 처음에는 거친 뫼로 불렸을 것인데, 이후 우리말과 동일한 소리와 뜻을 가진 한자어를 빌려 거칠산(居柒山)’으로 표기하였을 것이다. 거칠산국은 거칠산을 배경으로 형성된 정치체를 일컬은 것인데, 이칭(異稱)인 ‘장산국’과 ‘내산국’도 모두 같은 뜻에서 유래한 한자어이다. 장산국은 명칭상 현재 부산광역시 해운대구에 위치한 장산과 직접 관련되지만, 별도의 정치체를 지칭한 것은 아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거칠산국 [居漆山國]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황령산 黃領山

 

 

1. 소개[편집]

높이 427m의 전형적인 도심지 야산으로 부산광역시 남구수영구연제구부산진구에 걸친 시의 중심에 있으며 금련산맥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산 정상부는 특이하게도 남미대륙의 안데스 산맥의 화산에서 많이 발견되는 안데사이트(andesite), 즉 안산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황령산과 장산 일대의 수영만 지역 자체가 백악기 말 화산 활동 과정에서 형성된 지형이다. 때문에 산에서 화산지형에서 발견되는 암석이나 형상이 많다. 한국지리에서 배우는 중생대 말 불국사 변동.산역이 그리 넓지 않아 3시간 안팎이면 돌아볼 수 있고 체육시설과 야영장이 잘 갖추어져 있다. 산정은 비교적 평탄하며 소규모의 성채 경관을 나타내는 기반암이 노출되어 있다. 북동쪽으로 금련산과 연결되어 있다. 부산에 사는 사람들은 금련산도 구별 없이 전부 황령산이라 부르는데, 올라가 보면 능선이 완만하게 연결되어있는 느낌이기 때문인 듯. 최상단 사진에서 좌측이 황령산, 우측이 금련산이다.

 

2. 역사[편집]

고대시대에는 진한 국가 중 하나인 거칠산국이 자리 잡았던 곳으로 동래에서 황령산 일대에 이르는 영토를 보유하고 있었다. 산 이름은 《동국여지승람》에 누를 황(黃)자를 써서 황령산(黃領山)으로 기록, 현의 남쪽 5리에 있다고 하였고, 《동래부읍지》에는 거칠 황(荒)으로 기록하여 화시산으로 뻗어 있으며 마하사가 있다고 하였다. 부산 토박이 민간에서는 망령산(亡靈山)이라 불렀는데, 부정적이다 하여 고쳐 부르기 시작한 것. 1950년대~1960년대 기성세대 몇몇 분들도 망령산이라 부르는 때가 종종 있었으며 쌍팔년도부터 1990년대 초의 도로 지도에 표기에서도 망령산이라 적혔던 적도 있었다.동래부 때인 1422년(세종 7)에는 군사상 중요한 통신수단인 봉수대(봉화를 피우는 곳)가 산 정상에 설치되었다. 이 봉수대는 동쪽으로 해운대의 간비오산 봉수대, 서쪽으로 구봉 봉수대와 연결되어 있었으며 북쪽으로는 범어사, 계명산, 봉수대 등과 연결하도록 되어 있었다. 최근에는 해마다 산신제와 더불어 봉화를 재현하고 있다. 산에는 탄광이 여럿 있었다. 광안4동의 공무원교육원 자리에 있던 광산이 규모가 가장 컸는데 일제강점기에 구리와 을 캐던 광산이다. 천연기념물 제267호로 지정된 구상반려암은 세계적으로 희귀한 암석으로 마그마가 지하 깊은 곳에서 식어 만들어졌다. 반려암이 있는 쪽 루트는 서면 옆의 전포동 쪽에 가깝다.“

(나무위키-황령산)

 

 

 

 

세종실록에 나오는 거질다포(居叱多浦)

나무위키-황령산에 서 설명하고 있는 황령산의 한자어인 ()’ ()’은 모두 우리말의 거칠다라는 의미와 통한다. 황령산은 처음에는 거친 뫼로 불렸을 것인데, 이후 우리말과 동일한 소리와 뜻을 가진 한자어를 빌려 거칠산(居柒山)’으로 표기하였을 것이다에서 거칠다포의 음사로 보인다!

 

 

 

거질다포(居叱多浦)는 대마도(對馬島)와 민가의 연화(煙火)를 서로 바라볼 수 있을 만치 가깝고...“

 

 

황령산

 

 

 

 

황령산 - 대마도의 거리

 

 

 

부산 해운대에서 보이는 대마도

 

 

 

 

부산 해운대- 대마도의 거리

 

 

부산 해운대에서 직선거리 60여 Km 떨어진 대마도는 보통 때에는 보이지 않고! 

위의 사진과 같이 가끔씩 손에 잡힐듯이 가깝게 보인다! 

 

 

 

 

또 방원현(防垣峴)은 이 거질다포와 도로(道路)가 서로 통하니, 청하옵건대, 이 고개 위에다가 연대(煙臺)를 설치하고 또 각성(角聲)이 서로 들릴 수 있는 땅에 취각(吹角)할 사람을 두고서, 만약 적변(賊變)이 있을 때는 이런 것으로 빨리 알리게 하여 적들이 가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소서.

 

 

방원현(防垣峴)은 검색이 되지 않는다. 

 

 

 

 

조선에서 대마도에 이르기는 산길이 높고 험한 것이 수로에 배나 더합니다

 

https://meisterjhj2.tistory.com/48?category=974772 

 

조선에서 대마도에 이르기는 산길이 높고 험한 것이 수로에 배나 더합니다

조선에서 대마도에 이르기는 산길이 높고 험한 것이 수로에 배나 더합니다 조선에서 대마도에 이르기는 산길이 높고 험한 것이 수로에 배나 더합니다 단종실록 14권, 단종 3년 4월 7일 임오 1

meisterjhj2.tistory.com

 

 

 

각성(角聲)

 

조선시대 관원이나 군사를 소집하는 경우, 군대를 이동하거나 혹은 적변(賊變)이 일어났음을 알리기 위해 뿔나팔인 각(角)을 부는 소리.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EA%B0%81%EC%84%B1(%E8%A7%92%E8%81%B2) 

 

각성(角聲) - sillokwiki

조선시대 관원이나 군사를 소집하는 경우, 군대를 이동하거나 혹은 적변(賊變)이 일어났음을 알리기 위해 뿔나팔인 각(角)을 부는 소리. 개설 조선시대 각성은 취각(吹角)을 이용하는 것이 대표

dh.aks.ac.kr

 

 

조선에서 대마도에 이르기는 산길이 높고 험한 것이 수로에 배나 더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세종실록에서 기술한 것 같이 

"거질다포(居叱多浦)는 대마도(對馬島)와 민가의 연화(煙火)를 서로 바라볼 수 있을 만치 가깝다"

는 현재 부산 황령산과 대마도의 위치 기술과는 부합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