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하는 바로 선황의 불심을 이어 받은 천자의 존귀한 후예이어서...
폐하는 바로 선황(先皇)의 불심(佛心)을 이어 받은 천자(天子)의 존귀한 후예이어서, 그 선(善)을 쌓고도 남는 경사가 생각하건대 예전보다 감소되지 않을 것입니다...
성종실록 7권, 성종 1년 8월 18일 계해 2번째기사
1470년 명 성화(成化) 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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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7권, 성종 1년 8월 18일 계해 2번째기사 1470년 명 성화(成化) 6년 일본국 대마주 태수 종정국이 토산물을 바치며 많은 선물을 줄 것을 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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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대마주 태수 종정국이 토산물을 바치며 많은 선물을 줄 것을 청하다
일본국(日本國)대마주 태수(對馬州太守)종정국(宗貞國)이 특별히 두로(豆老) 등을 보내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그 서계(書契)에 이르기를,
"엎드려 생각하건대 국가에 일이 없고 변방에 병란이 일어나지 않아서, 봉수(烽燧)는 밤마다 평안(平安)을 알리고, 광비(筐篚)는 날마다 들어와 바치게 되니, 폐하(陛下)의 만세를 지극히 축복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마 소경(司馬少卿) 뇌충(賴忠)이 국주(國主)의 높은 명령을 받들어 근래에 축전(筑前)의 태재부(太宰府)에 부임(赴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신(臣) 종정국(宗貞國)이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수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먼저 달려갔으니, 이에 정벌(征伐)의 공로가 며칠 안되어 이루어졌습니다. 농부와 전부(典夫)가 서로 더불어 야외에서 지내고 가정에서 화락(和樂)하게 있을 여가가 없는데, 또 거기(莒崎)에 팔번궁(八幡宮)657) 을 건축하는 일까지 겹치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렇지만 그 비용이 많고 번잡하여 힘이 미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무릇 우리 나라의 무사(武士)가 된 자는 대대로 궁시가(弓矢家)에 태어나 이 신(神)을 숭배하고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 뇌충이 사신을 보낼 배를 준비하여 상관(上官)과 부관(副官)의 두 관원, 즉 사천 수좌(師川首座)와 종소 서기(宗紹書紀)를 보내어 보잘것 없는 토산물을 가지고 가서 집사(執事) 각하에게 드리면서 귀국의 좋은 물건 가운데 바라는 것을 고하려고 하는데, 용납하여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폐하는 바로 선황(先皇)의 불심(佛心)을 이어 받은 천자(天子)의 존귀한 후예이어서, 그 선(善)을 쌓고도 남는 경사가 생각하건대 예전보다 감소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로지 신(神)을 섬기는 것으로 근본을 삼고 있습니다. 무릇 신과 불(佛)은 한 몸입니다. 비유하면 얼음이 물로써 만들어진 것과 같은 것으로, 얼음이 풀리면 바로 물이 되는 것입니다. 조선과 일본은 법리(法理)에 대하여 말한다면, 어떤 때는 부처[佛]를 신(神)이라 하고 어떤 때는 신(神)을 부처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즉, 귀국의 후한 선물을 받아서 관선(官船)에 가득 싣고 냉천진(冷泉津) 입구의 언덕에 도착하면, 문득 신궁이 순식간에 완공된 것을 볼 것입니다. 이것 또한 성수(聖壽)의 만안(萬安)을 받들어 비는 한가지 일입니다. 부디 저의 심정을 생각하셔서 많은 선물을 내려 주신다면 매우 다행스러워 희망이 지극함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봄이 와서 얼음이 점점 풀리는데 건강 보전하시기를 바라고 이만 그칩니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책 7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8책 525면
【분류】외교-왜(倭)
[註 657]팔번궁(八幡宮) : 팔번신(八幡神)을 모신 별궁을 말하는데, ‘팔번신’이란 일본 고대의 궁시신(弓矢神)을 말함.
성종실록 13권, 성종 2년 12월 12일 기묘 5번째기사
1471년 명 성화(成化) 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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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월미원의 원의렴·비전주의 원영이 토의를 바치다
"대저 생각하건대, 신왕 폐하(新王陛下)께서 왕위에 오른 이래로, 밝기는 일월(日月)과 같고, 덕(德)은 건곤(乾坤)860) 에 짝하옵니다. 국가는 연경(延頸)861) 하여 지극한 어짊[至仁]을 우러르고, 천하는 지극한 교화[至化]를 관망하고 있으니, 지극히 축복[至祝]하고 지극히 기도[至禱]하오나, 또한 선황(先皇)께서 등하(登霞)862) 하심은 곧 귀국(貴國)의 대고(大故)이었습니다. 비록 그러나 목목(穆穆)히 부도(浮屠)863)의 법(法)에 뜻을 기울였습니다. 이러므로 일찍이 미지산(彌智山)에 어가를 머무르시니, 즉시 백의 대사(白衣大士)가 구름 속에서 나타났고, 더하여 감로(甘露)·수타미(須陁味)의 상서까지 아울러 이르렀으니, 아아, 성덕(聖德)이 감응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에 대가람(大伽藍)을 세워, ‘원각상(圓覺像)’ 이라 이름하고, 금벽(金碧)을 베풀어 더욱 수려(殊麗)하게 하시며, 만기(萬機)의 여가에 불도(佛道)를 수행(修行)하여, 일찍이 선근(善根)864) 을 심어 미리 명복(冥福)을 자뢰하였습니다. 이제 대저 이를 생각하니, 혹 때로는 솔타천(率陁天)을 소요(逍遙)하고, 혹 때로는 극락국(極樂國)을 유희(遊戲)하여 그 공덕(功德)은 한없이 많고 가이 없는 것[無量無邊]이었으니, 불가사의(不可思議)865) 한 것입니다. 우리 본조(本朝) 관정(寬正) 3년 임오(壬午)866) 에 천룡 선사(天龍禪師)가 재조(再造)하는 일에 나아가므로 해서, 멀리 빙문(聘問)을 이루게 되어, 의렴(義廉)이 욕되게 부서(副書)를 받들었는데, 드디어 돌아오는 사자[价]에게 도서(圖書)를 보내 주시니 참으로 귀중한 것이며 더할 수 없는 다행이었습니다만, 조가(朝家)가 근년에 병혁(兵革)867) 이 쉬지 아니하여, 이로 말미암아 귀국(貴國)에서 내려 주신 도서(圖書)도 또한 다 타버렸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치사(致謝)하는 정성도 받들 겨를이 없었으니, 참한(慙汗)868) 이 나올 뿐입니다. 이제 사선(使船)에 짐을 싣고, 상관인(上官人) 서화서당(西華西堂)을 차견(差遣)하여, 변변치 못한 방물(方物)을 바치어 태만(怠慢)한 죄를 진달하오니, 채납(采納)하시기 비옵니다. 무릇 행리(行李)가 왕래하는 관사[館]는 의렴(義廉)이 오래 맡고 있습니다. 특히 귀국의 황화사(皇華使)869)가 내림(來臨)하며, 빈연(賓讌)의 예(禮)로써 호궤(犒饋)하여, 그 성선(盛膳)870) 은 다른 나라에 비하여 만갑절이 될 것이오니, 집사(執事)는 도모하소서. 이어서 고(告)하는 것은 우리 낙양(洛陽)871) 동산(東山)에는 절[寺]이 있어 동광(東光)이라 하는데, 병선(兵燹)872) 으로 인하여 거의 기와가 부서져 조약돌 마당[礫場]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이 절은 바로 귀국(貴國)의 팽자(伻者)873) 가 본방(本邦)에 내조(來朝)하면 오로지 휴식하는 곳이니, 급히 주초(柱礎)를 보존하게 한다면 또한 의당하지 않겠습니까? 엎드려 원하건대, 귀국의 도움으로 거만(鉅萬)을 받아서 다시 복구하는 역사(役事)를 하게 되면, 이른바 대왕(大王)의 어진 교화[仁化]가 멀리 미침이 아니겠습니까? 토의(土宜)는 건건(件件)마다 별폭(別幅)에 수록(收錄)하였으며, 황구(惶懼)하게 우러러 바라는 지극함을 이기지 못하옵니다. 맹춘(孟春)이라 아직도 추우니, 순서(順序)를 보중(保重)하옵소서."
하고, 별폭(別幅)에는,
"병풍(屛風) 1쌍(雙), 강련위(絳練緯) 1필(匹), 백분(白粉) 1기(器), 박양전(薄樣牋) 2백 매(枚),주(朱) 5과(裹), 응우(鷹羽) 96, 백랍 수병(白蠟水甁) 1쌍(雙), 과자분(菓子盆) 10매(枚), 선자(扇子) 50병(柄), 염착발(染着鉢) 10매(枚), 백자발(白鎡鉢) 10매, 자단(紫檀) 50근(斤), 대도(大刀) 2, 진향(振香) 20근(斤), 침자(枕子) 2쌍(雙)."
이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책 13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8책 617면
【분류】외교-왜(倭) / 무역(貿易)
[註 860]건곤(乾坤) : 천지(天地).
[註 861]연경(延頸) : 목을 뻗침, 또는 기다리고 바람.
[註 862]등하(登霞) : 먼 하늘에 오름. 즉 제왕(帝王)의 죽음을 이르는 말.
[註 863]부도(浮屠) : 불교를 뜻함.
[註 864]선근(善根) : 불교의 용어로, 좋은 과보(果報)를 오게 하는 행위를 말함.
[註 865]불가사의(不可思議) : 사람의 생각으로는 헤아려 알 수 없음.
[註 866]임오(壬午) : 1462 세조 8년.
[註 867]병혁(兵革) : 전쟁(戰爭).
[註 868]참한(慙汗) : 몹시 부끄러워서 흘리는 땀.
[註 869]황화사(皇華使) : 중국 천자의 사신.
[註 870]성선(盛膳) : 성찬(盛饌).
[註 871]낙양(洛陽) : 경도(京都).
[註 872]병선(兵燹) : 전쟁 때문에 일어난 화재.
[註 873]팽자(伻者) : 사인(使人).
성종실록 28권, 성종 4년 3월 13일 계묘 3번째기사
1473년 명 성화(成化) 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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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경극전 경조윤 좌좌목씨 등이 사람을 보내 와서 토의를 바치다
황제 폐하(皇帝陛下)의 수(壽)가 남산(南山)처럼 높고, 덕(德)은 동해(東海)에 젖으시어, 부상(扶桑)의 물이 조회하고 계림(雞林)의 들[野]이 성대하기를 빌고 빕니다. 신(臣)은 선조 이래로 대대로 일역(日役)에서 사사(士師)200) 가 되니, 마치 진(晉)나라의 범자(范子)와 같은 자201) 이므로, 오로지 궁마(弓馬)를 맡아 부조(父祖)의 업(業)을 실추시키지 않았습니다. 본조(本朝)에서는 정해년202) 이래로 중원(中原)에 난리[風塵]203) 가 나서 전쟁이 사방에서 일어나매, 신의 고을도 함께 싸움터 안에 들어가서 적을 많이 대하게 되니, 요역(徭役)에 나가느라 농상(農桑)을 폐기하여 피륙이 가장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사졸(士卒)들이 타지(墮指)204) 의 재앙에 많이 곤고(困苦)하여 마치 백등(白登)의 포위205) 를 당한 것과 같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귀국의 명주와 무명의 은혜를 내려 주시면, 삼군(三軍)에서 얼어 죽는 것을 구제하고 황제의 은혜를 만세토록 우러를 것입니다. 변변치 않은 토산물 몇 가지를 별폭(別幅)에 갖추어 적으니, 살펴주시면 다행으로 여기겠습니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5책 28권 4장 A면【국편영인본】 9책 13면
【분류】외교-왜(倭)
[註 199]입도(入道) : 불문(佛門)에 출가(出家)한 사람.
[註 200]사사(士師) : 법령(法令)과 형벌(刑罰)을 맡은 재판관.
[註 201]범자(范子)와 같은 자 : 진나라 범선자(范宣子)가 법령(法令)을 맡아 형서(刑書)를 지었으므로 이른 말.
[註 202]정해년 : 1467 세조 13년.
[註 203]난리[風塵] : 응인(應仁)의 난리를 말함.
[註 204]타지(墮指) : 추위에 손가락이 얼어 빠짐.
[註 205]백등(白登)의 포위 : 한고조(漢高祖)가 백등산(白登山)에서 흉노(匈奴)인 묵특(昌頓)에서 포위되었던 것을 말함.
성종실록 32권, 성종 4년 7월 26일 을묘 2번째기사
1473년 명 성화(成化) 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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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인백단 삼주 태수 원교풍이 양영서당을 보내어 선물과 글을 올리다
"공경히 생각하건대, 황제 폐하(皇帝陛下)께서 보위(寶位)에 오르시어 천운(天運)을 이어받으시니, 구방(舊邦)이 유신(維新)하며, 덕(德)이 하(夏)나라·은(殷)나라의 초정(初政)보다 뛰어나시고 도(道)가 요(堯)임금·순(舜)임금보다 위에 짝하시니, 지극히 축하하고 지극히 축수합니다. 신은 선조(先祖) 이래로 가세(家世)에서 상국(上國)490) 에 빙문(聘聞)을 통하지 아니한 적이 없기 때문에, 경인년491) 가을에 일개 암자승(菴子僧)과 석도문(奭都聞) 등을 차견(差遣)하여서, 옛날의 맹세를 닦으며, 또 토의(土宜)의 미미한 정성을 바쳤습니다. 다행히 금상 황제(今上皇帝)492) 께서 왕위(王位)를 이어받으시는 초정(初政)을 만나서, 눈으로는 한(漢)나라 관리의 위의(威儀)를 보겠고, 귀로는 주(周)나라 시(詩)의 가송(歌頌)을 듣겠으니, 아아, 성대(盛大)합니다. 실로 문무(文武)의 나라인지라 영우(榮遇)하기가 너무나 크옵니다. 전사(專使)493) 가 일을 끝마치고 동쪽으로 돌아오게 되매, 화로 동반(火爐銅盤) 1개와 동경(銅磬) 1개를 더하여 내려 주시니, 이미 후한 은혜를 받았으므로, 감격하고 기쁜 마음이 지극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지금 만복사(萬福寺)의 주지(住持) 양영 서당(亮瑛西堂) 등을 보내어 바다를 건너가서 박(薄)한 폐물(幣物)을 바치어 오로지 황제께서 왕위를 이으신 것을 배하(拜賀)하게 합니다. 신은 비록 먼 하늘, 먼 바닷가의 땅에 있어서 위궐(魏闕)494) 아래에 달려가 마음을 바치지는 못하나, 구구(區區)한 단성(丹誠)495) 을 엎드려 예찰(睿察)하여 주시기를 빌며, 그리하여 주시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신의 봉지(封地) 안의 백주(伯州)에 만복 선사(萬福禪寺)라고 하는 옛 사찰(寺刹)이 있는데, 허물어져 무너진 지가 세월이 오래 되었으므로 장차 다시 영조(營造)하려고 하여, 저번 때에 상국(上國)에 조연(助緣)496) 을 구(求)하였으나, 너그러이 용납하여 주심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바라는 바는 대왕께서 관인(寬仁)으로써 포금(布金)497) 의 봉시를 속히 행하여 주시면, 불각(佛閣)과 승방(僧房)을 일시에 다시 옛날처럼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길이 성수(聖壽)가 만안(萬安)하시도록 봉축(奉祝)하는 일단이 될 것입니다. 하정(下情)498) 은 지극히 황공함을 이기지 못하여 변변치 않은 방물(方物)을 별폭(別幅)에 갖추었습니다."
하였는데, 그 별폭에는,
"활[弓] 2장(張), 백시 동대(百矢同臺) 1대(對), 대도(大刀) 10진(振), 관자 풍로(罐子風爐)·건명분(健茗盆) 2매(枚)."
이었다.
【태백산사고본】 5책 32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9책 42면
【분류】외교-왜(倭)
[註 490]상국(上國) : 조선(朝鮮)을 말함.
[註 491]경인년 : 1470 예종 원년.
[註 492]금상 황제(今上皇帝) : 성종(成宗)을 말함.
[註 493]전사(專使) : 특사(特使).
[註 494]위궐(魏闕) : 임금의 궁궐.
[註 495]단성(丹誠) : 진정에서 우러나는 정성.
[註 496]조연(助緣) : 절을 지을 때에 돈이나 재물로 도와 주어 인연을 맺는 일.
[註 497]포금(布金) : 베나 돈.
[註 498]하정(下情) : 윗사람에게 대하여 자기의 마음이나 뜻을 낮추어 이르는 말.
성종실록 290권, 성종 25년 5월 11일 무술 1번째기사
1494년 명 홍치(弘治) 7년
http://sillok.history.go.kr/id/kia_12505011_001
유구국의 사승 천장이 물자를 청하는 편지를 가지고 내빙하다
유구국(琉球國) 중산부주(中山府主) 사승(使僧) 천장(天章) 등이 내빙(來聘)하였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유구국(琉球國) 중산부주(中山府主)는 조선국(朝鮮國) 예조 대인 족하(禮曹大人足下)에게 받들어 올립니다. 대체로 삼한(三韓)은 만방(萬邦)의 우두머리이니, 많은 백성들의 영광입니다. 그래서 덕택(德澤)은 사이(四夷)590) 에게 두루 미치며, 인풍(仁風)은 이의(二儀)591) 와 같으니, 크도다 만복(萬福)이 진중(珍重)함이여! 그러나 몇 해 전부터 내려오면서 음문(音問)592) 은 통하지 못했지만 함께 맹세한 의리는 소홀하거나 간략하지 않고 온전했으며, 바다를 건너는 길이 너무 멀어서 찾아뵙는 것을 겨를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대마주(對馬州) 사람 평피고삼보라(平皮古三甫羅)가 지난해부터 이 섬에 내려왔습니다.들으니 저들 일족(一族)은 대대로 귀국(貴國)에 귀부(歸付)하여 신하로 벼슬자리에 끼었는데 이것을 다행으로 여긴다고 하며, 폐하(陛下)와 곤의(袞衣)593) 의 안부(安否)를 받들어 물은 다음에 말하기를, ‘근년(近年)에 이 나라의 사자(使者)라고 부르는 자가 공선(貢船)을 타고 건너와서 장사를 한다.’ 하니, 이것은 모서(謀書)594) 입니다. 그것이 어느 곳에서 나왔는가는 모르지만 전해 듣고서 놀랍고 두려움이 적지 않았습니다. 인해서 삼가 사승(使僧)을 보내어 빙문(聘問)하는 예(禮)를 이루도록 하였는데, 그 생각은 특별히 부합(符合)하게 하는 계약(契約)을 새로 내려 주셔서 뒷날 사선(使船)의 성신(誠信)을 삼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뒤로 우리 나라에 오는 글 중에도 역시 이 인(印)이 아니면 감히 신임하지 않겠습니다. 예물로 바치는 방물(方物)의 수는 별지(別紙)에 갖추어 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공방(孔方)595) 1만 민(緡)과 면주(緜紬)·목면(木綿)을 내려 주소서. 대국(大國)의 우로(雨露) 같은 은혜를 우러러 입어 소도(小島)의 물자가 떨어진 어려운 상황을 윤택하게 하시면 다행스러울 뿐입니다. 은혜에 보답하고 사례하는 것은 뒷날 음문(音問)에 기약하게 되니, 황공하여 머리를 조아립니다."
하였는데, 별폭(別幅)에는 목향묘 소통(木香苗小桶) 1개, 야자묘(椰子苗) 2본(本), 등묘 소통(藤苗小桶) 1개, 호초 사당 부 소호(胡椒砂糖付小壺) 1개, 호초(胡椒) 30근(斤), 백단(白檀) 50근, 정자(丁子) 20근, 등석 대소(藤席大小) 2매(枚), 광엽석(桄葉席) 2매, 과자분(菓子盆) 10매, 남만 유리(南蠻琉璃) 1개, 청색 백쌍(靑色白雙) 1지(地), 화문 일쌍(華紋一雙) 염부 일쌍(染付一雙) 합(合) 7개, 배옥 유리(盃玉琉璃) 1개, 염부 일쌍(染付一雙) 백색중 유문 일쌍(白色中有紋一雙) 합(合) 5개, 만년 보수(萬年寶數) 1백 15과(顆), 향(香) 1본(本) 14근(斤), 장 8척(長八尺) 청자 수기(靑瓷嗽器) 1개, 부수 다완(付嗽茶椀) 1개, 이상 16종(種)이었다.
【태백산사고본】 46책 290권 23장 B면【국편영인본】 12책 529면
【분류】외교-유구(琉球) / 무역(貿易)
[註 590] 사이(四夷) : 사방의 오랑캐.
[註 591] 이의(二儀) : 천지(天地).
[註 592] 음문(音問) : 편지.
[註 593] 곤의(袞衣) : 삼공(三公).
[註 594] 모서(謀書) : 위조한 도서(圖書).
[註 595] 공방(孔方) : 네모진 구멍이 있는 돈을 말함.
성종실록 7권, 성종 1년 8월 18일 계해 2번째기사
1470년 명 성화(成化) 6년 기사에서
폐하는 바로 선황(先皇)의 불심(佛心)을 이어 받은 천자(天子)의 존귀한 후예이어서, 그 선(善)을 쌓고도 남는 경사가 생각하건대 예전보다 감소되지 않을 것입니다.
선황(先皇)은 예종(睿宗)을 말한다!
성종실록 13권, 성종 2년 12월 12일 기묘 5번째기사
1471년 명 성화(成化) 7년 기사에서
선황(先皇)
선황(先皇)은 예종(睿宗)을 말한다!
특히 귀국의 황화사(皇華使)869)가 내림(來臨)하며, 빈연(賓讌)의 예(禮)로써 호궤(犒饋)하여, 그 성선(盛膳)870) 은 다른 나라에 비하여 만갑절이 될 것이오니, 집사(執事)는 도모하소서.
귀국의 황화사(皇華使)를 중국 천자의 사신이라고 주를 달아 놓았다!
일본국 월미원의 원의렴·비전주의 원영이 토의를 바치러 와서 조선에 와서 중국을 거론하는가?
"우리 낙양(洛陽) 동산(東山)에는 절[寺]이 있어 동광(東光)이라 하는데..."
낙양(洛陽)은 경도(京都)-쿄토라고 번역해야 자연스럽다!
성종실록 28권, 성종 4년 3월 13일 계묘 3번째기사
1473년 명 성화(成化) 9년
황제 폐하(皇帝陛下)의 수(壽)가 남산(南山)처럼 높고, 덕(德)은 동해(東海)에 젖으시어, 부상(扶桑)의 물이 조회하고 계림(雞林)의 들[野]이 성대하기를 빌고 빕니다.
남산(南山)은 종남산(終南山)으로, 동해(東海)는 황해(黃海)라고 해석해야 문맥의 뜻이 통한다!
성종실록 290권, 성종 25년 5월 11일 무술 1번째기사
1494년 명 홍치(弘治) 7년 기사에서
곤의[袞衣]
①삼공(三公)을 뜻하는 말. 삼공도 곤의(袞衣)를 입기 때문에 이를 비유하여 부르는 것임. ②임금이 입는 정복(正服), 곧 곤룡포(袞龍袍). [유사어] 곤룡포(袞龍袍).
[네이버 지식백과] 곤의 [袞衣]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삼공[三公]
조선시대 정1품 관직인 좌의정·우의정·영의정을 합하여 부르던 칭호.
[네이버 지식백과] 삼공 [三公]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삼한(三韓)은 만방(萬邦)의 우두머리이니, 많은 백성들의 영광입니다. 그래서 덕택(德澤)은 사이(四夷)에게 두루 미치며...“
“사이(四夷)
고대 중국 주변에 있던 이민족(異民族)을 총징한 용어로, 동이(東夷)•서융(西戎)•남만(南蠻)•북적(北狄)을 말함.“
[네이버 지식백과] 사이 [四夷]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사이(四夷)
요약 고대 중국에서 주변에 있던 이민족(異民族)을 총칭한 용어.
오랑캐 이(夷)는 중국, 즉 화(華)에 대한 이(夷)이고, 사는 4방을 의미한다. 중국인은 옛날부터 그들을 둘러싼 이민족을 4방으로 구별하여 동이(東夷:동방 오랑캐)·서융(西戎:서방 오랑캐)·남만(南蠻:남방 오랑캐)·북적(北狄:북방 오랑캐)이라고 하였으나, 이것을 총칭할 때는 4방의 외민족을 의미하는 멸칭(蔑稱)으로 사이라고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이 [四夷] (두산백과)
삼한(三韓)은 만국을 다스리는 천자(天子)이고, 동이(東夷)•서융(西戎)•남만(南蠻)•북적(北狄)을 덕택(德澤)으로 두루 미치며, 인풍(仁風)은 이의(二儀)와 같으니, 크도다 만복(萬福)이 진중(珍重)함이여!
우리가 화(華)이고 동이(東夷)•서융(西戎)•남만(南蠻)•북적(北狄)은 사이(四夷)였다!